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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만 사진작가의 아트 슈퍼마켓

M K H ARTCULTURE 2016. 6. 8. 13:10



김중만은 예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조금은 파괴적인 전시회를 하나 준비했다. 

전시명은 ‘ART SUPERMARKET(아트 슈퍼마켓)’. 김중만 작품 한 점의 가격이 단돈 만원부터 시작한다. 







“저는 요즘 괜찮습니다. 즐겁습니다”로 시작되는, 김중만 작가의 친필이 담긴 전시회 초대장을 받았다. 

내용을 읽어 내려가자니 다소 의아하고도 특이한 개인전이다. 

이 전시를 두고 한 지인에게서 ‘김중만의 43년 사진가 삶에서 가장 파괴적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럴 법도 한 것 같다.

 
우리가 나눌 인터뷰의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일차원적인 설명을 먼저 하자면, 그는 이번 전시에서 본인의 오리지널 작품을 만원에 판다. 물론 십만원, 백만원, 이삼백만원짜리 작품도 있지만 시작가는 일단 만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을 소유하는 기쁨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예술가로서의 바람에서 시작된 일종의 가격파괴란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콜라와 우유처럼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일종의 ‘창고 대방출’이라고 생각하라는데, 예술가의 삶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데다 예술가 스스로 결정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 같다. 

전시회를 일주일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청담동 벨벳언더그라운드, 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전시회 준비로 바쁘시죠? 최근에 부다페스트에도 다녀오셨고요. 

요즘처럼 전시 준비할 때는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지 모르겠어요. 스케줄이 있으면 그 시간에 맞춰서 움직여요. 

부다페스트 갔다가 며칠 전에 왔어요. 전시가 하나 있었는데, 오프닝에만 참석하고 빨리 들어왔어요. 

일주일 후에 있을 아트 슈퍼마켓 전시 준비도 해야 하고, 그것 말고도 마무리할 작업이 두 가지가 더 있어서요. 


건강해 보이십니다. 

몸은 나이가 60이 넘으니까 성한 데가 없죠.(웃음) 돌이켜 보면 내가 젊은 시절에 남들보다 조금 더 술도 많이 마시고 약도 하고, 그런 거에 비하면 굉장히 건강한 편이에요. 왜 그런가 생각을 해봤더니, 촬영을 하도 다니니까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어서 그래요. 

세상의 어떤 것을 담으려고 하면 미술이나 문학은 잠깐 어디를 갔다 오든 뭐를 보든 작가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그릴 수 있어요. 

그런데 사진가들은 다른 예술가들이랑 달리 두 발로 그 앞에 가 있어야 해요. 한마디로 굉장히 육체적인 직업이죠.











예술을 소유하는 즐거움


‘아트 슈퍼마켓’ 아이디어가 굉장히 재미있어요. 

“Can Art you happy?”라는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예술을 소유하는 기쁨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동안 제가 무엇을 보고 어떤 세상을 찍었는지, 사진으로 모아놓은 제 삶의 슬픔과 기쁨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2천 점 정도를 시작으로, 팔리면 슈퍼마켓처럼 곧바로 그 자리에 다른 사진을 붙일 계획이에요. 


‘또 사고 쳤다’라는 말씀 많이 들으시죠?(웃음) 

해보니까, 오만한 것은 아닌데 이걸 할 수 있는 작가는 나밖에 없어요.(웃음) 제 작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4개예요. 창고를 한번 정리할 때도 된 것 같아서, 전시를 위해 새로 작업한 게 아니라 기존의 작품 중에서 골랐어요. 어떤 작품은 새똥도 묻어 있어요.


준비하면서 느끼는 점은 뭔가요? 

(사진작가 경력) 43년째인데. 그동안 해놓은 작업들을 다 꺼내서 한 장 한 장 사인을 해요. 

한 장 한 장이, 전시회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또 그 사람들이 만원에 2만원에 3만원에 사서 가져갈 때는 오리지널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게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사인을) 하다가 보니까 ‘정말 내가 미쳤구나’, 이 많은 사진을 찍은 것도 몰랐는데 지금 보니 양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이렇게까지 일을 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8천 점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사인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네요. 

실제로는 더 많아요. 두 달째 사인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정도 됐니?” 물으니까 5천5백 장 정도 됐대요. 

“얼마나 남았니?” 물어보니 만 장 정도 남았대요.(웃음) 이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놓으려고요. 


그런데 이렇게 가격이 낮아지면, 수지가 맞나요? 

전시할 건물을 빌리고 스태프를 구하고, 실질적으로 전시 하나를 진행하는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이 있어요. 

다 따져보니 많이 팔아 6천 장 팔면 본전이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생각하면 이걸 왜 했을까 생각도 드는데, 

예술을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소유할 수 있는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그 모습을 보고 싶어요.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일단 기본적으로 성공적일 것 같긴 한데, 한 사람이 10장만 구매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어서 의문이기도 합니다.(웃음) 

어느 날 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전시 규모를 물어보더니 자기가 3분의 1을 가지고 가도 되겠느냐는 거예요. 

처음에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보통 사람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을 소장하게 하는 기쁨을 줄 수 있는지, 

예술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를 보고 싶어서 한 사람이 10장만 구매할 수 있도록 조건을 달았어요.


컬렉터나 갤러리에서 꺼려하진 않던가요? 

그럴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저와 특별한 커넥션이 있는 곳이 없어요. 제가 구태여 시스템 안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필요도 없고,

저는 제 식으로 대중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나누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컬렉터나 갤러리, 재단)이 그들의 방식으로 하는 것을 인정해요. 좋은 작가의 작품을 비싼 가격에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보여줄 수 있고 팔게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소속이 없고 제의를 받은 적도 없어요. 혼자서 외국에 나가서 싸우는 것이 제 작업 스타일이니까요. 











예술가의 사명은 ‘나눔’


김중만 작가는 스스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주어진 공간 안에서 여러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에 비해 자유롭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겸손해지고 조금 더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실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예술가의 역할,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첫째로 나눔이에요. 어떻게 보면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피카소예요. 

왜 위대한 것이냐? 피카소 작품이 담긴 포스터 한 장은 만원에 살 수 있어요. 엽서는 오백원에 살 수 있어요. 집에 가져다 놓으면 ‘나도 피카소가 집 한 모퉁이에 있어’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그 작가를 보면서 인생을 살아가요. 나눔이라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예술적으로 풍요롭게 살아오신 분인데, 예술을 소유하지 못한 보통 사람의 삶은 어떻게 상상하시나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대학교 다닐 때는 필름 사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대학교 마치고 나서는 카메라 사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75년부터 사진을 했는데, 90년도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샀어요. 

저는 굉장히 가난한 유학생이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마음에 상처도 컸고, 친구들이 “너희 아버지는 의사인데 너는 왜 주말마다 알바를 하고 다니고 방학 때마다 없어지니?” 하고 물으면 어린 마음에는 상처가 될 수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알게 된 거죠. 

‘이 사람들(부모)이 너무 가난해서 나에게 줄 수 없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던 것이 지금의 가치관을 만들었군요. 

촬영하는데 필름이 없으니까. 그냥 찍을 때도 있었어요. 필름 안 들어 있는 카메라로 그냥 찍어요. 카메라도 남에게 빌려 썼어요. 

그런 시간들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게,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해준 것이 사실이에요. 

또 하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나는 어린 나이부터 굉장히 유명세를 탄 사람이에요. 

이상하게 스캔들도 많고, 추방도 당하고. 구치소도 다녀오고 정신병원에도 가고. 30대까지 보이지 않던 많은 방황들도 저를 만들었죠.

그땐 둘 중 하나예요. 완전히 낙오자가 되거나 완전히 일어나서 한 인간으로 살려고 하거나. 후자가 맞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실질적인 나눔 실천인 셈이네요. 

제가 정말 유명해지고 세계적인 작가가 됐을 때, 물론 그때도 이 방법으로 하겠지만 일단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는 파괴적인 전시를 해보고 싶었어요. 워홀을 좋아하고 고흐를 좋아하면 뭐해요. 그림의 떡이잖아요. 

오리지널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소유의 기쁨을 선물하고 싶어요.


편견일 수도 있지만, 작품 값 1억의 작가로서 쉽지 않은 생각과 행동이에요. 

아마 젊었을 때라면 어떤 예술가의 오만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좀 더 진솔하게 세상을 봐요. 

이제는 작가로서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관, 가치관, 철학관에 대해서 조금씩 정리를 하고 안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무엇인가 답을 내줘야 하는 시기가 된 거죠. 


지금은 돈에서 자유로우신가요? 

작품 값에 대한 자존심은 없어졌어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방법이 있어요. 내려놓는 거예요. 내가 조금 더 사람들의 생각이나 삶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얼마나 진실한 작업을 하고 있는가를 물어봐야 하고 그걸 실천해야 하고. 

작품만 하면 뭐해요. 전시회 하고 책 내고, 작품 비싸게 팔면 뭐합니까. 


좋다던데요.(웃음) 

그래봤자 여기 있는 세 사람 중 집에 앤디 워홀 작품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 없어요. 

앤디 워홀 폴라로이드 하나가 1억이 넘는 걸 봤어요. 똑같은 거예요. 내 작품 만원짜리가 50년 뒤에는 1억이 될 수도 있어요. 

그건 지금은 모르는 거지만 그렇게 살고 싶은 거죠.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약속을 하고 싶은 거예요. 

‘예술을 위해서 살고, 죽어라 일을 하고, 그 일을 하고 살아가는 데 여한이 없다. 나눠주자’ 이렇게요. 














열정과 순수 사이의 선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뭔가요. 

열정과 순수가 과연 평행선을 탈 수 있느냐. 

예술가로서 열정과 순수라는 이름 아래 작업을 하고 있지만, 자칫 그것이 욕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하는 작업은요? 

몇 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전시 끝나면 바로 세월호 아이들을 위한 작업을 준비하고 싶어요. 

안산 단원고 아이들 교실을 옮긴다니까 가기 전에 찍어놓고 싶고. 이건 제 나름대로 세상을 기록하는 거예요. 


이렇게 계속 일만 하실 것 같네요. 

세계적인 대가들과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얻은 것이 있어요. 

어느 것이 더 나으냐, 열정과 순수가 평행선을 탈 수 있을까. 어쩌면 욕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열정이라는 것이 순수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정말 좋은 점심을 먹었어요. 80까지는 죽어도 일을 안 한다.(웃음)


어쩐지 상상이 안 되는데요.(웃음) 

2년 전에 부탄에 와이프, 아들과 여행을 갔어요. 부탄은 세계 행복지수 1위라고 하고 신비롭게 광고하잖아요. 

실제로 가면 먹을 것도 형편없고, 볼품없어요. 죽어라 가봤자 오래된 절간 하나. 여하튼 갔어요. 

부탄은 신비로운 나라니까 이상한 것이 있겠지 하면서. 강원도가 훨씬 좋아요, 사실은.(웃음) 


사람들이 순박한 것이. 시골집에 들르면 폴라로이드로 가족사진을 찍어줘요. 이 사람들은 가족사진을 처음 본 거예요. 

너무 행복해하더라고요. 이게 참 좋은 일이구나 느꼈어요. 서울에 와서 와이프가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다고요. 

조금만 더 활동하다가 그냥 배낭 메고 부탄이나 네팔, 티벳 가서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주면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요. 

그런데 폴라로이드 필름이 더 이상 안 나온다고 해서 좀 더 궁리를 해야 할 것 같지만요.


그런 삶을 꿈꾸시나요? 

네팔이든 아프리카든, 어디든 가서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최소한 제 작품이 5억에서 10억 정도 하면 가겠다고 말했어요. 

1억짜리 작가가 천원짜리 촬영해주는 것과 10억짜리 작가가 천원짜리 촬영해주는 것은 다르니까요. 


어떤 작가로 남고 싶으세요? 

위대한 작가가 되어서 작업을 하다가 쓰러지고 싶지도 않고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아요. 좋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한 번쯤은, 한국인으로서 최소한, 한국에도 이러한 작가들이 있구나 생각하게 만들고 싶어요. 


예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 가능한 말일까요? 

저 스스로는 답을 내렸어요. 내가 행복할 때 가능해요. 행복의 바이러스는 전해질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