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with] 내 사진 단돈 만원, 62세 김중만
요즘은 '라이카 S2' 끼고 자… 몸에 낙서를 많이 했는데 다 의미가 있어
사진작가의 길? 미친듯이 찍되, 얼마만큼 진솔하게 사는지 돌아봐야돼
레게머리는 싹둑 자르고, 펄럭이는 치마바지를 입었다. 요지 야마모토, 프라다, 알렉산더 맥퀸을 즐긴다. 아울렛 제품이란다.
한강과 박찬욱은 닮았다?
-사진 한장에 만원! 뭐 화나는 일 있으셨나?
"난 그저 이런 마켓들이 전국으로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오프닝날 계원예대 교수들이 와서 자기들도 해보겠다며 흥분하더라. 국민소득 4만 달러 돼야 문화예술과 일상이 상생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대중과 가까워지기를 시도할 거다."
-모든 예술가가 김중만처럼 할 순 없다.
"물론이다. 좋은 작품 생산하는 게 우선이다. 집요하게 노력해야 한다. 맨부커상 받은 한강을 봐라. 그는 민주화 이후 갈 길을 잃은 우리 문학에 방향을 보여줬다. 한강을 보면 박찬욱이 떠오른다. 어딘가 닮았다. 폭력과 아름다움의 극명한 대비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아트슈퍼 마켓을 구상한 게 파리에서 1억원에 사진을 판 순간이었다고 했다.
"세계 사진 시장은 깜짝 놀랄 정도로 커져가고 있다. 우리는 내 작품이 1억에 팔린 걸 놀라워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1억은 기본이다. 그 작품이 한복 사진이라는 게 의미 있다. 우리만 가진 소박하지만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다."
라이카 S2와 동침하는 이유
-백남준은 '정보 무당'으로 불렸다. 김중만도 무당인가?
"영성이나 신내림 같은 것엔 관심 없다. 나는 훨씬 육체적이다. 다만 내가 피사체로 삼는 대상들은 내 마음에 스크래치를 일으키는 것이다. 과일 한 조각이든, 부서진 나무든. 전생에 한(恨)이 많은 사람이었나 싶다. 아름다운 건 많은 사람들이 한다. 좀 더 예쁘게 찍으면 훨씬 잘 팔린다. 하지만 나는 첫눈에 좋은 것보다 볼수록 좋은 사진이 좋다. 사진은 두 종류로 나뉜다. 광고사진과 가족사진. 5년 뒤 다시 봐도 마음에 울림을 주는 사진은 어느 쪽일까?"
-니스 국립응용미술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사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엔 카메라의 속도에 반했다. 5분만에 결과가 나오니! 그 속도가 함정이란 걸, 셔터 한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깨닫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잠자고 샤워할 때 빼고 늘 카메라를 끼고 산다더라.
"잠잘 때도 끼고 잔다.(웃음) 요즘은 '라이카 S2'를 끼고 자는데, 얘는 한달을 데리고 자도 마음을 안 연다. 까다롭다. 24장짜리 플라스틱 카메라도 좋아한다. 일본 가면 50개씩 사온다."
-일회용 카메라 말인가?
"사진은 입자 싸움이다. 이 플라스틱 렌즈를 통해서 찍은 사진은 입자가 굉장히 거칠다. 이걸 확대하면 핀이 안 맞고 거칠어진다. 회화적인 느낌이다. 제일 만만한 건 캐논이다. 얼마 전 파주 다녀올 때도 자동차 운전하면서 한손으로 사진을 찍었다. 수직 수평을 똑바로 맞추면서, 4분의 1초까지 안 흔들리고 찍는 연습!"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고 했다.
"삶이 예술이지. 사진은 그 기록이고. 100만원짜리 붓이 있다고 해서 그림을 잘 그릴 순 없다. 100만원짜리 신시사이저가 있다고 연주를 잘하는 건 아니다. 사진은 다르다. 누구나 찍을 수 있고, 빠르게 터득한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만큼 세상을 진솔하게 살았느냐, 돈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느냐이다. 그것들과의 싸움이다."
의사 아버지가 남긴 유산
-부친이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헌신한 의사였다.
"그 아버지 때문에 좀 골치가 아프긴 했다.(웃음)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맏이인 날 불러앉히더니 '은행에 200만원이 있다'고 하시더라. 마치 20억 유산을 물려주는 듯 당당한 목소리로. 나는 요지 야마모토를 입지만 아버지는 양복 두 벌, 가방 두 개, 청진기 세 개에 모터 달린 자전거가 전부였다. 나는 그 양반 그림자도 못 밟는다. 값어치로 매길 수 없는 큰 유산을 아버지는 내게 주셨다."
-가족과 아프리카에 살다가 혼자 프랑스로 유학 갔다. 필름 살 돈도 없을 만큼 가난했다던데.
"주말마다 식당 알바를 했고, 필름 사려고 밥을 굶었다. 내 돈으로 처음 카메라를 산 게 1990년이다. 사진 시작한 지 25년 만이다. 가난했던 20대가 내 인생의 전성기였다."
-43년 사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케냐에서 동물들 찍었을 때라고 했다.
"아프리카는 내게 치유의 땅이다. 마약, 이혼 등으로 병든 내 영혼과 육신을 그 땅이 어루만져주고 고쳐주었다. 아버지의 땅이기도 하다. 스타 사진 찍기를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간 건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기도 했다. 8개월 동안 싸구려 봉고차를 덜덜거리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촬영했다. 아내가 그러더라. 그 막막한 사바나를 바라보며 뭔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내 얼굴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더라고.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스타들 사진을 찍을 때 나는 그저 육체 노동자에 불과했다."
-김중만 같은 사진작가가 되려면?
"미친 듯이 찍으면 된다."
-재능도 타고나야 하지 않을까?
"전혀. 재능은 인내심과 연관돼 있다."
-20대에게 한 말씀.
"젊음의 특권은 '방황할 수 있는 자유'다.
20대에 자신을 무엇으로 만들겠다고 섣불리 결정하지 마라. 화려한 스펙을 쌓는 것?
나는 그게 오히려 자신감 부족으로 보인다. 방황할 수 있는 자유란,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보고 사랑해보라는 의미다. 우리 인생은 예상보다 훨씬 길고, 예상보다 훨씬 기회가 많다.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다. 의연해져라. 원없이 방황하라."
전시문의(02)542-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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