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 ART/: Scenery

원덕희 - 평범하지만 특별한 풍경

M K H ARTCULTURE 2014. 10. 16. 21:59


취미이건 직업이건 사진가들은 특별한 사진을 좋아하는 듯하다. 

공모전 작품집을 보면 오랜 기다림의 미학 끝에 찰라를 포착한 사진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진가로서 독특하고 절묘한 장면을 '창출'하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보정'을 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담은 사진이 좋다. 



풍경사진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좁아서 유명한 출사지는 제한되어 있는 터라 그 사진이 그 사진이다. 

물론 같은 풍경이더라도 '내가 찍은 사진'이니 특별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에 한정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더구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 창피할 정도의 유명출사지에서 사진가들의 횡포를 겪으면 그들의 사진에서 더욱 인위적인 냄새가 풍긴다. 

천편일률적인 풍경사진은 상을 받을지언정 감동은 주지 못한다.


내가 사진작가 원덕희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남들이 찍지 못하는 사진을 추구하지 않는다. 누구나 보아왔고,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시골의 장면을 찍을 뿐이다. 

남들이 가질 수 없는 사진을 가지기 위해서 해외여행도 불사하는 세상이지만 그는 그가 사는 곳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오히려 특별하고 우리 모두의 추억을 되새겨 주는 마력을 가진다. 

지난번 글에 다 담지 못한 원덕희 작가의 평범한 장면이지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는 사진을 소개한다.









수확한 농산물을 집에서도 편안하게 팔 수 있었다. 중간상인들이 수시로 동네로 들락날락거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힘들게 장으로 나가셨다. 조금 더 좋은 값에 팔아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시장에서의 어머니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동네에서만 살아왔고 농사만 지으신 분이 영악한 도시의 아낙네들을 어떻게 상대했는지 새삼 생각해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온 가족이 함께 밭에서 일을 할 때 아버지께서는 자주 허리를 펴시고 먼산을 보셨다. 

부지런한 어머니께서는 '단풍 구경 오셨소?'라고 타박하셨다. 

오래된 앨범을 찾아보았는데 지금 내 나이보다 몇 살이나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벌써 허리가 구부정하고 노쇠화가 확연하다. 

도저히 농사를 지을 건강이 아닌 아버지께서는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농부가 되어야 했고 환갑잔칫상도 받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구멍가게에 가다가 실수로 개천 아래로 떨어졌다. 

크게 다쳤고 선혈이 낭자했는데 아버지께서는 십리 밖에 있는 면소재지의 병원으로 나를 자전거에 태운 채 내달았다. 

늦게 본 아들의 얼굴의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피가 흐르는데 십리 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그 높은 오르막길을 오르셨다. 

오죽이나 답답하고 힘드셨을까?









대학생이 된 내가 시골집에 다니러 왔다가 다시 돌아갈 때 부모님은 길을 떠나는 내게 밭에서 따온 '홍시'를 보자기에 싸주셨다. 

상처가 있고 못생긴 홍시를 차 안에서 꺼내먹기 창피해서 자꾸만 홍시 보자기를 감추었다.









제삿날이 되면 닭을 잡았는데 닭을 쫓아서 마루 아래로 들어갔다가 먼지만 뒤집어쓰고 닭은 더 멀리 내달았다.









어머니는 수건을 항상 쓰셨는데 주무실 때도 '머리에서 바람이 난다'며 쓰시고 주무시곤 했다. 

머리에서 무슨 바람이 나냐고 웃어넘기기만 할 뿐 정작 어머니의 추위를 다스려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점심을 드시기 위해 잠시 들른 집에서도 쉬는 법이 없으셔서 마당 가득히 늘어놓은 깨나 콩을 보살피셨다.









어머니와 일상을 함께하는 잡종견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손길을 받는 것은 늘 작은 손수레였다. 

밭으로 나가실 때는 연장만 실렸을 뿐이지만 돌아오실 때는 곡식들이 가득 실려 있어서 좌우로 휘청거리면서 위태로웠다. 

그리고 잡종견은 수레와 어머니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소는 마실 것이라면 환장하는 동물이지만 라면국물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절대 먹지 않았다. 소고기로 만든 스프 때문이리라. 

파리와 모기가 제 피를 빼앗아가는 고통에도 일체의 울부짖음이 없이 꼬리만 흔들 뿐이지만 

제 송아지가 팔려나갈 땐 며칠이고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어린 아이라도 그 소를 탓하는 경우는 없었다.









어머니를 보고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다. 왜 어머니지 '할머니'라는 말인가? 

그런데 어머니의 등은 굽어 있었고 펴실 때마다 힘겨워하셨다.









시골에 제비가 흔했을 때 제비가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제비 똥이 마루로 마구 떨어졌지만 

그 누구도 제비집을 없애버리고 제비를 쫓아내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여름날 어머니께서 들에서 집에 돌아오셨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수돗가였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컵에 담을 여유도 없이 급하디 급한 갈증을 해소하셔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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