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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태 25주년, 당신이 본 적 없는 25장의 사진들

M K H ARTCULTURE 2014. 10. 2. 15:09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 춤추는 아이. 아래 사진들은 1989년에 일어난 천안문 사태의 광경들이다.

25년 전인 1989년, 중국 베이징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는 몇 주에 걸쳐 계속됐지만, 중국 당국은 1989년 6월 4일 베이징 도심에서 잔인하고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했다.

정확한 희생자 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백 명 이상이 살해된 것으로 보고된다.


아래 사진들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시민을 향해 마구잡이로 발포하고 장갑차로 학생들을 깔아뭉개기 직전, 

천안문 광장에서 베이징 시민들이 보낸 겨우 며칠 간의 행복한 시위 현장이다. 


마치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연상케 하는 놀라운 사진들이다.

아래 사진들이 찍힌 직후, 천안문은 곧 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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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초대 주석의 얼굴에는 페인트가 뿌려졌다.











시위대는 광장에 민주주의 여신을 세웠다











그리고 이 동상은 그들의 투쟁을 상징했다.











1981년 6월 1일, 아이들은 광장에서 웃는 얼굴로 춤을 추었다.











학생들은 관제신문을 불태웠다.











베이징의 군인들은 시위에 우호적이었다.







이후 무력탄압에 동원된 해방군 부대는 

베이징에 지인이 없고, 베이징 시민에게 무차별 발포하는데 큰 저항감이 없다는 이유로

신장 자치구 등에서 차출된 군인들이 중심이었다.










광장에서 승리의 V 를 그리는 시위대











시위대는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그건 마치 페스티벌처럼 낭만스러웠다.











학생지도자 '왕단' 이 거리에서 호소하고 있다.











단식 투쟁을 벌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겐 정부가 족쇄나 마찬가지였다.











언론이 시위대에 참가하였다. 승리의 일보 직전이었다.











천안문 광장 시위에는 여유와 유머가 있었다.











사람들은 다가올 승리를 미리 축하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시위대에 가담하였다.











교육 실습대도 시위하였다.











광장은 발디딜틈이 없었다.











개혁을 부르는 깃발들











그러나 승리는 불확실해졌다.















시위는 끝났다.